기가막히고 코가막히는 제1회 박정희 전 대통령 추모예배에 대하여



요즌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故 박정희 전 대통령 추모예배입니다.


하나님이 독재하셨으니 우리나라도 독재해야 한다.

이 나라가 이렇게 잘 살게 된 것은 故 박정희 전 대통령의 은혜이다~~

등등

교회의 머리가 예수그리스도이시며, 하나님의 성품이 사랑이심을 전혀 모르는

이야기를 하고...ㅠㅜ




거두절미하고

페이스북에 김동호 목사님께서 올려 놓으신 글이 있어

스크랩하여 붙여 올립니다.

아래부터는 김동호 목사님의 페이스북에 있는 글입니다.

김동호 목사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dongho222)




어제 몸살에 대한 글을 올렸습니다.

글을 섬세히 쓰질 못해서 친구분들 중에는 제가 진짜 몸살을 앓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시고 염려해 주시는 분들이 있었습니다.

제 요즘 몸살은 몸 몸살이 아니라 마음 몸살입니다.
가벼운....

그 마음 몸살 때문에 오늘 설교가 나왔습니다.
매우 조심스러운 설교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고민 많이하고 작성한 설교입니다.
길지만 한 번 읽어봐 주셨으면 해서 올립니다.

마태복음 이야기는 빠르면 내일 새벽
아니면 화요일 새벽부터 다시 올리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여러분 굿모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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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위와 권위주의.
롬 13:1-7.

(2013년 10월 27일 높은 뜻 씨앗이 되어 교회 주일 설교)

지난 10월 25일 서울에 있는 어느 교회에서 몇 몇 교회가 연합하여 제 1회 박정희 대통령 추모예배가 열렸습니다. 그 소식을 듣고 어안이 벙벙해 졌습니다.

고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으니 그를 좋게 보고 좋은 평가를 할 수는 있다고 생각하나 그 분의 딸이 현직 대통령이 된 상황에서 그것도 34년 만에 느닷없이 교회가 앞장서서 그분의 추모예배를 드린다는 것은 아무리 좋게 생각해도 이해가 가질 않았습니다.

설교자는 어렸을 적 가난하게 산 경험을 이야기하며, 하나님이 박정희 전 대통령을 통해 우리나라에 큰 축복을 내려 준 것이라고 말했답니다.




그리고 그 목사는 박 전 대통령을 독재자라고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도 무조건 순종하라며 독재했다는 이야기를 했답니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우리나라도 독재해야 한다"고 훈계했답니다.




그리고 그는 한국교회가 흔들리는 이유가 목회자들이 박 전 대통령처럼 소신 있게 교회를 운영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으며, 자신은 원로목사지만 아직도 교회에서 내준 사무실을 사용하고 교회가 차 기름을 다 넣어 준다고 말했답니다.



저는 그 이야기를 들으며 우리 한국교회는 당분간 더 추락을 하게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참 마음이 아프고 슬펐습니다. 누가 봐도 권력에 아부하는 것으로 보이는 우스꽝스러운 예배를 드리고, 거기서 독재까지 합리화하는 것도 모자라 찬양하는 설교를 하는 기독교를 세상 사람들이 어떻게 볼까 싶어서 참으로 속이 많이 상했습니다.

더군다나 하나님을 독재자로 묘사한 대목에서는 정말 할 말은 잃게합니다. 그건 정말 하나님에 대한 사탄적인 모독입니다. 하나님은 피조물인 우리들에게 자유를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백성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십자가에 다시는 분이십니다.

독재자는 자신의 생명과 권력을 위하여 백성을 십자가에 달아 처형하는 사람이며 백성들의 자유를 억압하는 사람입니다. 세상에 다른 사람도 아닌 기독교의 목사가 하나님을 독재라고 말을 합니까? 이게 어떻게 제 성신을 가지고 할 수 있는 설교입니까?

이게 오늘날 우리 한국 교회의 현실이고 수준이라면 우리 한국 교회는 아직도 과대평가된 것이 사실입니다. 우리 한국의 기독교는 앞으로 더 추락하게 될 겁니다. 그리고 그래야 정신을 차리게 될 것입니다.

1999년 '생사를 건 교회개혁'이라는 책을 썼었습니다. 그 책의 핵심은 어떻게 하면 사람이 주인노릇하는 교회를 하나님이 주인이신 교회로 개혁할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구체적으로 다룬 내용은 교회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독재를 막자는 것이었습니다.

목회자인 제 눈으로 볼 때 우리 한국교회의 교회 정치는 비민주적이었습니다. 당회가 삼권을 다 장악하고 교인들 위에 군림하는 모습이었습니다.

당회가 교회의 행정, 사법, 입법의 기능을 다 장악하고 행사하는 구조였습니다. 권력의 집중이 바로 독재인 겁니다. 그래서 완전한 삼권의 분립까지는 아니더라도 당회의 권력을 제직회와 나누어야 한다는 안을 내 놓았습니다.

정책을 결정과 그것의 감사는 당회가 하고 그 정책의 시행은 제직회가 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제안한 안은 당회원은 제직회의 부장이 되지 못하게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당회원이 예산결제를 하지 못하게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목사들도 잘못하면 교인들 위에 군림하고 독재자가 되기 쉬운 면이 있으니 6년에 한 번 씩 교인들의 신임을 받자는 안도 내어 놓았습니다.

이 책이 제법 많은 교회 교인들을 의식화(?)하게 되어 제법 많은 교회에서 문제가 제기 되었습니다. 그러자 세계에서 제일 크다고 하는 어느 교회에서 일간 신문에 제 주장을 반박하고 광고성 기사를 지면의 1/3정도를 할애하여 냈습니다.

그 내용은 기독교는 민주주의가 아니라 신주주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당신의 권위를 위임목사에게 부여하셨으니 위임목사를 반대하는 것은 곧 하나님을 반대하는 것이라는 내용이었습니다.

그 광고를 보고 제가 신주주의를 가장한 인본주의라고 반박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신본주의가 되기 위하여 우리 사람들끼리는 민주주의를 해야 한다는 주장을 내었습니다.

높은 뜻 숭의교회를 개척하면서 내 세운 것은 단 하나였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주인이 되시는 교회'였습니다.

하나님이 주인이 되시는 교회가 되게 하기 위하여 우리는 사람이 주인이 될만한 위험을 미리 제거하는 정관을 갖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그러한 위험을 제거하기 위하여 앞에서 말씀드린 당회와 제직회의 역할 분립 그리고 장로와 안수집사 그리고 권사의 6년 단임 그리고 담임목사와 전임목사의 재신임 투표와 원로제도 폐지등을 정관에 넣었습니다.

하나님이 주인이신 교회를 하기 위하여 교회 안에서 교인들끼리는 민주화 되어야 한다는 것이 제 평생의 목회신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목사와 장로 그리고 집사와 권사가 교회의 계급화되는 것에 대한 위험성과 문제성을 지적하며 그것을 구별이어야하지 차별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을 지금까지 다른 교회에 집회를 갈 때마다 설교하고 있습니다.

독재에 반대하여 목숨을 걸고 투쟁한 민주화 인사들에게서 나타나는 현상이 있었습니다. 물론 개인적인 생각이었습니다. 그것은 민주화를 위하여 생명을 건 민주화 인사들이 민주를 잘 모른다는 것이었습니다.

남이 독재를 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지적하고 투쟁할 수 있었지만 정작 어떻게 하는 것이 민주적인 것인가는 자신들도 잘 모르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80년대 초 한 참 대학교에서 민주화 데모가 극렬했을 때 어느 대학교에서 기독교과목을 강의하고 있었습니다.

중간시험때가 되어 시험을 치려고 문제지를 들고 교실로 올라 갔더니 운동권 학생 하나가 시험 보이콧에 대한 선동을 학생들 앞에서 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올라가니 그 학생이 저에게 10분간만 시간을 달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제가 허락해 주었습니다. 그러자 그 학생이 왜 시험을 보이콧 해야 하는지를 설명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아니 선동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저는 앞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런데 뒤의 어떤 학생 하나가 시험 보이콧에 대하여 반대의견을 내 놓았습니다. 그러자 같은 운동권 학생 하나가 이렇게 소리를 질렀습니다.

<저 매국노 잡아라!>

저도 모르게 벌떡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화가 나서 누군지 모르는 그 원동권 학생에게 '나쁜 놈의 새끼'라고 욕을 해 주었습니다. 아마 제 입에서 공개적으로 튀어나간 첫 번째 욕이었을 겁니다. 저는 욕을 사람에 대한 폭력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제 기억에 욕을 해댄 기억이 거의 없습니다. 그런데 그때는 참지 않고 그렇게 욕을 해 대었습니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전 아무개보다 더 나쁜 놈이라고 욕해 주었습니다. 운동권 아이들에게는 참으로 모욕적인 언사였습니다. 독재를 반대하고 민주화를 이루겠다고 하는 놈들이 독재를 하는 놈과 다른게 하나도 없다고 흥분해서 야단을 쳐 주었습니다.

민주주의란 여러 의견을 종합하여 다수의 의견을 좇아 행동하는 것인데 자기의 생각과 주장과 다르다고 그 사람을 매국노라고 하는 놈들이 어떻게 민주화를 이룰 수 있게냐고 호통을 쳤습니다. 그날 정말 제가 많이 흥분했었습니다. 민주화를 위하여 생명을 건 아이들에게 민주적인 의식이 없다는 것에 대한 절망감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요즘 그런 절망감을 교회 안에서도 느끼고 있습니다. 그것은 목사와 장로만이 교회의 민주주의를 잘 모르는 것만 아니라 목사와 장로들의 잘못된 교회 운영에 대하여 반발하는 교인들과 제직들도 정작 교회의 민주주의를 잘 모른다는 것입니다.

민주주의를 주장하지만, 제가 보기엔 그것이 교회의 민주주의는 아닙니다. 목사와 장로의 지나친 자기 권리주장이 교회 민주화의 장애가 되는 것과 같이 집사와 교인들의 지나친 자기 권리주장이 역시 교회 민주화의 장애가 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제 결론은 목사든 장로든 집사든 교인이든 우리는 모두가 다 민주주의를 잘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번에 우리 교회가 세우는 높은 뜻 씨앗스쿨에서 우리 아이들에게 민주시민교육에 대한 커리큘럼을 넣고 싶습니다.

그리고 높은 뜻 연합선교회에 속한 모든 교회 목회자들에게 교회의 민주주의에 대한 교육을 필수적으로 교회 안에서 교인들에게 시키라고 권면하려고 합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우리 높은 뜻 교회의 높은 뜻 정신은 하나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주인이신 교회입니다. 우리 높은 뜻 교회는 그 정신을 구체적으로 실현하기 위하여 6가지 구체적인 목표를 설정하였습니다.

그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1. 하나님께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교회.
2. 하나님의 식과 법을 고집하며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 이루는 교회.
3.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 즉 사역에 힘쓰는 교회.
4. 올바른 장로정치를 통하여 민주적인 교회가 되기를 힘쓰는 교회.
5. 십일조 정신과 희년정신을 실천하는 교회.
6. 교인들을 세상의 왕 같은 제사장으로 키우는 교회.

저는 하나님이 주인이신 교회가 되게 하기 위하여 무엇보다도 앞에서 말쓰드린 바와 같이 교회의 민주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올바른 장로정치를 통하여 민주적인 교회가 되기를 힘쓰는 교회'라는 실천 목표를 정한 것이었습니다.

우리 교회는 장로교회입니다. 장로교회의 정신은 민주주의입니다. 교회가 민주주의를 내세우는 것은 그래야만 진정으로 하나님이 주인이신 신본주의를 실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 장로교가 선택한 민주주의는 대의 민주주의 입니다. 대부분의 민주주의 국가가 선택하고 있는 민주주의도 다 대의 민주주의입니다.

그것은 국민의 대표를 뽑아 저들에게 적절한 권한과 권위를 위임해 주고 저들에게 자신들을 대신하여 국가를 통치해 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모든 사안을 모든 국민들이 다 나서서 의논하고 결정한다는 일이 불가능하고 오히려 그것이 국가의 혼란과 정체를 가져오기 때문입니다. 민주주의라고 해서 모든 사안은 모든 국민들이 다 모여서 의논하고 토론하여 결정하려고 하지는 않습니다. 그것은 민주주의가 아닙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들의 대표를 자신들의 손으로 뽑아 국가의 운영을 위임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해서 국민들이 자신들이 권력을 다 빼앗긴 것은 아닙니다. 몇 년에 한 번씩 자신들이 위임해 준 대표들을 평가하고 심판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국민들은 그 권한을 가지고 민주주의의 균형을 잡아가고 있습니다. 백성들은 그 권한이 침해 받을 때에는 데모도 하고 저항도 하여 그것을 바로 잡아가곤 합니다.

권력과 권위는 부패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해서 정당한 권력과 권위를 인정하지 않게 되면 조직은 부패 못지 않은 혼란에 않게 됩니다. 우리 옛말에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는 말이 있는데 그게 바로 그 뜻입니다.

이번에 높은 뜻 하늘교회의 담임목사 청빙 과정이 있었습니다. 조금 혼란이 있었습니다. 저는 혼란의 핵심이 교회 민주주의에 대한 오해 때문이라고 지금까지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오해의 책임은 목회자인 저에게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교인들에게 그러한 교육을 제대로 시킨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교회에서 담임목사의 청빙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담임목사의 청빙을 민주적으로 한다고해서 그 모든 청빙프로세스와 심사와 평가와 결정을 전체교인들이 하지 않습니다.

그 모든 과정을 교인들이 자신들의 대표로 뽑아 준 당회에서 추진합니다. 그리고 결정합니다. 결정과정과 방법은 당회가 결정합니다. 모든 과정을 당회에서 처리할 수도 있고, 청빙위원회를 결성하여 당회원 아닌 교인들을 참여시킬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엄밀히 이야기하자면 당회를 교인들의 대표가 아닌 교인위에 군림하는 조직으로 이해했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일종의 당회에 대한 교인들의 불신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공동의회에서 모든 교인들이 청빙의 과정과 프로세스를 밞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민주주의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장로교회가 아닙니다. 그런 정치를 민주적이라고 생각해서 그런 프로세스를 주장하고 고집하는 교단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런 교회를 회중교회라고 합니다.

그러나 앞에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매우 이상적인 것처럼 보이기는 하지만 실제로는 깊은 혼란과 분쟁의 소지가 많기 때문에 회중정치를 하는 교단은 장로교회에 비하여 비교도 되지 않게 적습니다.

당회에 권한을 위임하였다고 하여도 모든 결정을 당회에서 끝내지는 않습니다. 담임목사 청빙이나 예산과 결산 같은 큰 문제는 공동의회를 열어 교인들의 비준을 받습니다.

공동의회는 회의하거나 토론하는 장소가 아닙니다. 엄밀히 말하면 공동의회는 당회의 중요한 결정을 비준하는 곳입니다. 당회의 월권이나 실수에 대한 안전장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민주주의는 국민들이나 교인들이 자신을 대신하여 교회나 나라를 통치해 달라고 맡겨 준 권위를 남용하여 권위주의화 할 때 무너집니다. 그러면 민주적 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그 권위주위를 무너트리기 위하여 투쟁합니다.

그런데 그 민주화 투쟁을 하는 사람들이 자주 범하는 보편적인 오류가 있습니다. 그것은 부패한 권위주의를 배격하다가 정당한 권위와 권력까지 부정한다는 것입니다.

정당한 목회자의 역할과 당회의 역할까지도 부정하고 독재와 권위주의로 매도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평생 설교를 해 오면서 오늘 본문의 말씀을 가지고 설교를 하는 것이 이번이 처음입니다. 오늘 본문은 독재자들이 제일 좋아하는 본문중에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부패하고 타락한 독재자의 권력과 권세까지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권세까지 거스리는 권세와 권력이 세상에는 있는데 그 권세는 당연히 하나님이 주신 권세라고 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권세와 권력만이 오늘 본문이 말씀하시는 권세와 권력입니다.

민주주의는 지도자가 백성을 지배하려고 하지 않고 섬기려고 할 때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또한 민주주의는 백성들이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를 존경하고 복종하려고 할 때 또한 이루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만 합니다.

모든 권세와 권위를 다 부정하고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는 것은 민주주의가 아닙니다.

교회의 비민주화의 위험은 아무래도 목사와 장로들에게 많습니다. 그러나 그에 못지 않게 교인들에게도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오늘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조심스럽게 경청하실 수 있어야 하실 겁니다.

우리 높은 뜻 씨앗이 되어 교회는 아직 미조직교회입니다. 한시 바삐 정당한 절차를 밟아 당회도 구성되고 안수집사와 권사도 세워져 조직 교회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교인 여러분들은 신중히 여러분들의 대표를 뽑아 주시고, 그리고 여러분들의 권리를 위임해 주십시오. 그리고 신뢰해 주시고 따라주십시오. 그러나 목회자나 여러분들의 대표가 옳지 않다면 재신임 투표때나 공동의회를 통하여 여러분의 의견을 주장해 주십시오. 그러나 여러분의 대표나 목회자를 신뢰할 수 있다면 하나님이 세우신 권세로 인정하시고 존경하고 따라 주십시오.

그래서 정말 우리 교회가 추구하는 올바른 장로정치를 통하여 민주적인 교회가 되기를 힘쓰는 교회가 되게 해 주십시오. 저는 이제 은퇴가 얼마 남지 않았는데 이 설교를 한 이후로 높은 뜻 어떤 교회의 일에도 권세로 작용하는 일에 개입하지 않을 작정입니다.

할 수만 있다면 오늘이라도 당장 은퇴를 하고 깨끗하게 높은 뜻 교회를 떠나고 싶은 심정입니다. 그러니 오늘 설교를 제 자리나 권세를 차지하기 위한 사심있는 설교로 오해하지 말아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올바른 장로정치가 우리 교회에서 이루어질 수 있도록 공부하고 기도하고 노력하여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그리하여 정말 우리가 추구하는 하나님이 주인이 되시는 교회를 세워나갈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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